[정민정기자의 커들링] 세상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자는 물론이고, 사회적 편견과 차별로 인해 소외된 이들에게 ‘공감’은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공감만으로 충분할까?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접촉’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는 개념이 바로 ‘커들링(Cuddling)’이다.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심리학자 주디스 올로프는 『공감 생존 가이드』에서 감정이입을 위한 9가지 전략을 소개하며, “공감은 경계를 설정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면서도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공감의 연장선에서, 신체적 접촉을 통한 정서적 교류인 ‘커들링’이 주목받고 있다. 커들링은 단순한 스킨십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정서적 안정을 찾는 과정이다. 실제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따뜻한 신체 접촉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고, 신뢰 호르몬인 옥시토신 분비를 증가시켜 심리적 안정감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접근을 상담 및 치유 과정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해온 정미희 상담사는 커들링을 활용한 정서적 지지 방식이 위기 상황에서 유의미한 효과를 보였다고 전했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시작입니다.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들에게 ‘괜찮다, 넌 소중한 존재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단순한 말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온몸으로, 따뜻한 포옹으로 그들을 안아줘야 합니다.”
하지만 공감과 신체 접촉이 언제나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공감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소진되거나, 부적절한 신체적 접촉이 오히려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커들링은 반드시 ‘동의’와 ‘경계 설정’을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올로프는 감정이입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실천법을 제안한다.
- 신체 접촉을 제한하고, 포옹을 선택적으로 할 것
- 감정적인 과부하가 왔을 때는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것
-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과 분리할 것
이러한 접근은 커들링에도 적용된다. 피해자 지원 상담에서도 상담사들은 ‘포옹은 선택’이라는 원칙을 기반으로, 내담자가 신체적 접촉을 원할 때만 이를 제공한다. 중요한 것은 억지로 위로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커들링은 단순한 스킨십을 넘어,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강화하는 심리적 기제이기도 하다. 은퇴 후 관계 재정립을 연구하는 관계 심리학 강의에서도, 신체적 접촉이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한다.
은퇴 이후에는 기존의 사회적 관계가 약화되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관계를 유지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행복한 제2의 인생을 위한 필수 요소가 된다. 포옹이나 손을 잡는 행위는 정서적 유대감을 키우고 관계를 지속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는 점점 신체적 접촉을 줄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서적 교감을 위한 신체적 접촉은 관계 유지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커들링을 통한 교감은 은퇴 이후에도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 은퇴 후 관계를 고민하는 중장년층, 그리고 다양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커들링’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신체적 접촉이 불편한 이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며, 경계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서로 연결될 수 있으며, 연결될 때 더욱 강해진다는 사실이다. 서로를 안아주는 것이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이라면?
이제 우리는 더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포옹을 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