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종합뉴스/민들레지가] "저는 학교폭력 피해자이자 생존자입니다."
저는 저 자신을 소개할때 피해자라는 단어만 붙이지 않고, 생존자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네이버 국어 사전에 "생존자"란 단어를 검색해보니 [살아있는 사람, 또는 살아 남은 사람]이라고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 소개글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학교폭력이란 상황속에서 살아 남은 사람입니다."
뉴스를 보면 학교폭력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학교폭력을 경험하지 못한 보통의 사람들은 그런 소식을 접하면서 "피해자가 왜 죽어?" "억울해서라도 살아야지" "자신의 목숨을 버릴 만큼 친구가 소중해?"라는 말을 내뱉는 사람들을 볼때면 분노가 치솟아 오릅니다. 그렇게 말하는 어른들은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의 잘못된 해결방법이라고 생각하여 하는 말이지만, 학교폭력 피해자가 학교폭력이라는 상황에서 벗어날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극단적 선택”입니다.
그러나 학교폭력의 유일한 탈출구가 “극단적 선택”이 된 이유는 피해자가 만든게 아니라 학교폭력을 무관심하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전제입니다. 일반인들은 ”학교폭력은 학교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또는 ”학교폭력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학교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우리 학교는 학교폭력이 없는 깨끗한 학교입니다” 학교선생님들은 “학교폭력보다 학교 명예가 중요하기에 학교폭력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합니다.“
그럼 학교폭력으로 지옥같은 학교생활하는 피해자들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요? 저 또한 어른들에 무관심 속에 학교폭력의 피해자이자 생존자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어른들은 또 이런 말을 합니다.
”이제 학교를 졸업한 성인 이잖아“
”넌 학생이 아니라 사회인이잖아“
”지나간 과거 이야기 그냥 잊어“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하였고,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고통이기에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학교폭력“으로 인해 피해자에게 주어진 고통은 어른들이 가늠하지 못할 만큼 아픕니다.
그 고통의 무게를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알기에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먼 길을 떠나버립니다. 어른들이 학교폭력을 외면한다면 학교폭력의 피해자들에 마지막 탈출구 “극단적 선택”은 어느 누구도 바꿀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