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정기자의 커들링] 한겨울 찬 바람이 매섭게 불던 어느 날, 상담실에서 만난 한 내담자가 말했다. “누군가 따뜻하게 안아주기만 해도 숨이 좀 쉬어질 것 같아요.”
이 말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법한 이야기다. 사회가 점점 개인화되고, 디지털 환경이 인간관계를 대체하면서 우리는 점점 더 ‘터치 기근(Touch Hunger)’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신체적 접촉이 사라진 세상에서 ‘커들링(Cuddling, 포옹)’이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라 치유와 회복의 도구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커들링은 단순한 스킨십이 아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커들링은 감정적 유대감을 형성하고 신체적, 심리적 안정을 돕는 강력한 수단이다. 신체적 접촉을 하면 우리 몸에서는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 호르몬은 흔히 ‘사랑 호르몬’이라 불리며, 신뢰감과 안정감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과학적으로도 커들링은 신경계를 안정시키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의 수치를 낮추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의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꾸준한 신체적 접촉이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만큼 인간에게 ‘안아주는 행위’는 본능적으로 필요하며, 이는 단순한 애정 표현을 넘어 심리치료의 중요한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심리치료에서 커들링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실제 상담 현장에서 커들링을 접목한 치료법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트라우마 치료에서는 신체적 접촉이 환자의 불안감을 줄이고 감정적 안정을 찾게 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환자들에게 안전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신체적 접촉은 신뢰를 회복하고, 긴장된 신경계를 이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심리치료의 역사 속에서 신체적 접촉은 오랜 논쟁의 대상이었지만, 최근 연구들은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아동이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를 가진 이들에게 커들링은 언어보다 강력한 교감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상담 현장에서 실제로 커들링을 적용했던 한 상담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담자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커들링을 통해 전달할 때가 있어요. 어떤 내담자는 말보다 따뜻한 손길 하나가 자신을 더 안전하게 만들어준다고 합니다.”
커들링은 감정적 유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특히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애착이 불안정했던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연구에 따르면, 안정적인 애착을 경험한 사람들은 불안과 스트레스에 더 잘 대처하며, 사회적 관계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PTSD를 겪는 이들에게도 커들링은 매우 효과적인 치유 도구가 될 수 있다. 심리치료 연구에 따르면, 정서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따뜻한 포옹을 받을 때 심박수가 안정되고 불안감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신체적 접촉이 반복될수록 트라우마로 인한 감정적 반응이 점차 완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커들링이 심리치료에서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상담사가 내담자와 신체적 접촉을 할 때에는 반드시 윤리적 고려가 필요하다. 심리치료에서는 내담자의 동의 없이 신체적 접촉을 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된다. 내담자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철저히 존중해야 하며, 커들링을 치료적 도구로 사용할 경우에도 반드시 내담자의 자발적 동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상담사가 내담자와 신체적으로 접촉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중요한 고려 요소다. 일부 문화권에서는 신체적 접촉이 치료의 일환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반면, 한국에서는 상담사의 신체적 개입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존재한다.
커들링은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적인 온기’를 되찾는 과정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신체적 접촉을 점점 줄이고 있지만, 커들링이 제공하는 정서적 안정과 치유의 효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따뜻한 신체적 접촉이 주는 안정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커들링을 통해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정서적 유대감을 강화하며,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커들링이 보다 건강한 방식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 과제가 있다.
✔ 신체적 접촉에 대한 문화적 거부감 해소
한국에서는 공적인 자리에서 신체적 접촉을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적절한 접촉이 감정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 커들링 전문가 양성 및 제도적 지원 필요
전문적으로 커들링을 활용한 심리치료를 제공하는 전문가가 필요하며, 이에 대한 윤리적·전문적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 공공기관 및 상담센터에서 커들링을 도입하기 위한 방안 마련
심리치료의 한 기법으로 커들링을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내담자가 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어야 한다.
한때 우리는 가족과 친구, 연인과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등을 토닥이며, 서로를 포옹했다. 하지만 점점 바쁜 일상과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그 따뜻한 접촉을 잊어가고 있다.
신체적 접촉이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을 회복하고 치유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준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 순간이 언제든, 다시 한 번 따뜻한 손길을 건네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