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정기자의 커들링] 어느 날, 상담실에서 만난 한 내담자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너무 추웠어요. 사람을 믿기도 힘들었고, 내 감정도 몰랐어요. 그런데, 처음으로 내 온도를 느꼈어요." 정신적, 감정적 위기를 겪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말보다 더 강력한 치유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온기’, 즉 따뜻한 접촉이다.
최근 심리치료 분야에서는 ‘커들링(Cuddling)’ 이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단순한 신체 접촉이 아니라, 정서적 지지를 기반으로 한 감정적 연결이다.
버지니아 사티어(Virginia Satir)가 제시한 ‘빙산 메타포’ 를 바탕으로, 커들링이 단순한 스킨십이 아니라 우리 내면 깊숙한 감정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과정임이 밝혀지고 있다. 과연 커들링은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리는 어떻게 따뜻한 손길을 통해 치유될 수 있을까?
빙산을 떠올려보자. 우리가 수면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거대한 얼음 덩어리의 일부일 뿐이다. 진짜 크고 중요한 부분은 수면 아래 깊숙이 가라앉아 있다. 사티어는 인간의 감정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우리가 겉으로 보이는 행동과 말은 빙산의 윗부분일 뿐, 그 아래에는 대처 방식, 감정, 지각, 기대, 열망, 자기 존중감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이것이 바로 심리치료의 핵심 요소이며, 커들링이 필요한 이유다. 단순한 신체적 접촉이 아니라, 내담자가 숨겨놓은 감정을 발견하고, 표현하고,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커들링이 단순한 포옹 이상의 의미를 가지려면, 우리는 그 속에 담긴 심리적 효과를 이해해야 한다.
1.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거나 억누르며 살아간다. 하지만 커들링은 몸이 먼저 반응하게 만든다.
온기를 통해 “나는 받아들여지고 있어”, “내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괜찮아” 라는 안정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2. 신체와 감정은 하나의 시스템
인간의 마음과 몸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신체적 접촉을 통해 감정이 위로받을 수 있고, 감정을 다스리면 신체적 긴장도 풀린다.
때로는 “괜찮아, 잘하고 있어” 라는 말보다, 따뜻한 손길 하나가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3. 상처받은 자존감을 회복하다
빙산 메타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기(self)’ 다.
과거에 받은 상처, 어린 시절 충족되지 못한 욕구는 우리 내면에 그대로 남아 있다. 커들링을 통해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감정을 되찾을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성인이 되면 혼자서 잘 견뎌야 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연결을 필요로 하는 존재다. 아이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온기와 포옹이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커들링이 더욱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심리적 외로움 증가: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감정적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
정신 건강 위기: 우울증, 불안 장애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들은 감정적 단절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치유와 회복: 커들링은 단순한 신체적 접촉이 아니라, "너는 혼자가 아니야" 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다.
인권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온기와 포옹을 받을 권리’ 또한 인간 존엄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다. 심리적 지지 없이 살아가는 것은, 보이지 않는 형태의 고립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서로를 포용하고, 감정적 연결을 회복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어른도 포옹이 필요하다."
이 말은 단순한 감성적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본능적 욕구이자, 감정적 회복을 위한 중요한 열쇠다. 커들링은 더 이상 가벼운 트렌드가 아니다.
이제는 정신 건강, 자아 존중, 그리고 인간관계의 회복을 위한 강력한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따뜻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아니, 우리 모두는 이미 따뜻한 존재다. 다만, 그 온기를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